리비아 홍수 원인
리비아 홍수는 2023년 9월 11일 북아프리카 지중해 일대를 초토화시킨 사이클론 ‘대니얼’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이 사이클론은 그리스 중부 지역에서 1,100mm에 가까운 비를 1주일 동안 내려 15명 가량 사망자를 냈습니다.
이후 지중해를 건너 리비아로 향한 사이클론은 규모를 키워 다시 많은 비를 내렸습니다.

리비아 위치
피해가 집중된 곳은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900km 떨어진 데르나라는 항구 도시입니다.
데르나는 연평균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한 지역이었는데 하루 만에 400mm초과하는 비가 내지자 강과 댐들이 범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의 사진에서 리비아 위치를 확인하세요.


리비아 홍수 원인
리비아 홍수 원인은 역시나 짧은 시간에 집중한 강수량으로 인해 데르나의 교량 4곳과, 인근에 위치한 댐 2곳이 새벽 4시에 붕괴되면서 데르나 시내의 1/4 정도가 그대로 물에 휩쓸렸습니다.
데르나의 두댐은 무아마르 카다피 집권기에 건설되었지만 10년 이상 지속된 내전으로 인해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료 사진에에서 보는 바와 같이 데르나 시내는 초토화되었습니다.
리비아 사망자
이 사이클론과 댐의 붕괴를 시작으로 물이 차오르면서 연쇄적으로 낡은 건물들은 붕괴되기 시작하였고 결국, 사망자는 5,000명에서 20,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실종사와 사상자의 대부분은 갑자기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해 휩쓸려 떠내려 갔다고 합니다. 현재 강가에는 수 천명의 주검이 수습되지 못한 상태로 썩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홍수전의 데르나 전경
리비아 정치
데르나의 두댐은 무아마르 카다피 집권기에 건설되었지만 10년 이상 지속된 내전으로 인해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의 리비아통합정부(GNU)가 서부, 토브룩의 리비아국민군(LNA)이 동부를 통치하며 10년째 이어지는 리바아 내전으로 인해 경제 발전은 후퇴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국가 인프라의 관리나 건설은 엄두도 내지 못한채 손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큰 피해를 입은 데르나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의 통치를 받아오기 때문에 더욱 열악한 상태엿습니다.
리비아 역사
리비아는 오랜 역사를 가진 지역으로, 고대부터 다양한 문화의 지배 속에서 부침있는 역사를 배경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이로 인해 리비아의 역사 다양한 문화와 제국의 충돌, 그리고 현대까지도 정치적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 고대 리비아
- 리비아 지역은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았으며, 바레빗 문명과 함께 미노아 문명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 그리스와 페니키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특히 카르타고 식민지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 이 후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리비아 지역은 로마 제국의 중요한 주요성과 헤라클레아 단과 같은 도시들이 발전했습니다.
2. 이슬람 지배
- 7세기에 이슬람 제국의 정복을 받아 이슬람 문화와 종교가 리비아에 전파되었습니다.
- 이슬람 제국이 붕괴하고 아바스 유마이야 제국이 형성되면서 리비아 지역은 아바스 유마이야 제국의 영향권에 들어갔습니다.
3. 오스만 제국의 지배
- 16세기에 리비아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습니다. 트리폴리와(현재 리비아 수도) 바레빗 지방은 오스만 제국의 행정제도하에 관리되었고 이슬람문화가 자리잡게 됩니다.
4. 이탈리아 식민지 지배
- 20세기 초,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식민지로 침략하였고, 이후 1911년 이탈리아-터키 전쟁으로 리비아를 본격적으로 식민 지배를 하였습니다.
- 이후 이탈리아식민지로서 리비아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고, 이탈리아식민지 지배 하에서 괴델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5. 제2차 세계 대전과 독립
- 제2차 세계 대전 후, 이탈리아는 패배하고 리비아는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습니다.
- 1951년, 리비아는 독립국가로 선언되고 이드리스 1세가 리비아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6. 모아마르 카다피 통치
- 1969년, 모아마르 카다피가 군사 쿠데타를 통해 리비아를 통치하였고, 그의 지배는 2011년 아랍 봄 혁명으로 종식되었습니다.
7. 아랍 봄 혁명과 현대
- 2011년, 아랍 봄 혁명으로 인해 모아마르 카다피가 폭정으로부터 물러나고, 리비아는 혼란과 내전 상태에 빠졌습니다.
- 현재까지도 리비아는 정치적 불안과 내전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지역입니다. 복잡한 역사와 여러 나라의 식민 지배를 수없이 받아왔고, 독립 이후에는 군사 쿠테타 정권이 자리 잡았습니다. 갈등의 갈등을 겪고 있는 리비아의 내전 상황은 쉽게 마무리 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